9급 공무원의 화이팅은 연가 한 장인 것 같아요
🏢 9급이 ·
오늘도 출근했다. 아침 7시 30분. 지하철에서 눈 반쯤 감은 채 탔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"화이팅!"이라고 외치고 내렸어. 뭐 하는 건지 모르겠던데 나도 따라 입으로 "화이팅"이라고 중얼거렸다. 근데 진짜 웃기더라ㅋㅋ 이 나이 먹고서도 화이팅이 먹히나 싶었는데 막상 내 상황 생각해보니까 화이팅이 필요한 게 맞는 것 같았어.
요즘 업무가 진짜 미쳤어. 지난주 금요일만 해도 민원인 5명이 몰려왔는데 셋 다 다른 담당자라고 넘겨야 할 일이었거든. 우리 팀은 4명인데 부장님은 순환보직이 자주 난다고 했어. 그래서 지금 같은 9급인 선배가 내년 상반기쯤 떠날 거라고. 그럼 또 신입이 들어오겠지. 라면서 웃으셨어. 웃음이 무서웠어ㅠㅠ 어쨌든 지난주 수요일에 강남역 근처 GS25에서 김밥과 라면을 4천 원에 먹으면서 "이게 다야"라고 생각했다. 급여명세서 본 그날 이후로 연가를 어떻게 쓸지만 계산하고 있어.
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아저씨 말이 자꾸 떴어. 화이팅. 근데 이게 뭐가 화이팅이나 싶으면서도 좀 웃겼다. 9급 첫 월급 받고 절망했던 날을 떠올렸는데, 그 이후로 1년이 지났어. 아직도 짠테크 계산기를 들었다 놨다 하고, 점심값 5천 원이 아깝지만, 어쨌든 살긴 산다ㅋㅋ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봐.
어제는 직장 카톡방에서 한 선배가 "주말에 신림역 근처 닭볶음탕 집 가능?"이라고 물었어. 내가 "거기 2인분에 15천 원이잖아요"라고 답했더니 "정확히 아네ㅋㅋ"라고 했어. 이게 우리 직장 문화인가 봐. 가성비를 계산하고 평가하는 9급 공무원들. 그것도 뭔가 슬프지만 또 귀엽더라. 우리 팀은 점심시간에 항상 "어디가 싼데?" "그 카페 아메리카노 3천 원"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. 진짜 이게 일상이 된 지 오래됐어.
그래도 오늘 하루를 버티려면 화이팅이 필요한 것 같아. 민원인 응대도 해야 하고, 어제 밀렸던 서류도 처리해야 하고, 연가 신청도 눈치봐가며 해야 하고. 좋은 꿈을 꾸려면 먼저 오늘을 이겨내야 하니까. 이번 주말에도 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생각인데, 그것도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어. 내일 또 화이팅 하자.
